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특정한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마치 자신이 현실세계를 넘어선 피안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나는 햇살 좋은 날,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광활한 갯벌이나 해뜨기 직전의 안개 자욱한 호수 같은 풍경을 대할 때면 하늘에서 신령스런 알이 내려와 그 속에서 영웅이 탄생할 것 같기도 하고, 안개 낀 저 호수 너머로부터 영웅의 배필이 될 신비한 여인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상상 해보곤 한다.
나의 작업은 단순히 이렇게 내가 바라본 특정한 모습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이 풍경을 매개로 특정 장소나 사물에 대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느낌이나 상상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풍경 속에 약간의 소품이나 인물을 배치하고 연출함으로써 우리의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정신적 흔적으로써의 ‘신화적 풍경’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다.
모든 신화는 우리가 바라보고 경험하는 이 세상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또다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강력한 실재, 신들의 세계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실재에 대한 믿음이 이번 작업 ‘신화적 풍경’의 근본적인 주제이다.
이정록 / 2006
Mythic Scape
There are times in lives you encounter the scenery that makes you feel like you are in realm of nirvana beyond reality.
When I encounter infinite coastline or a misty lake before the sunrise, I feel like a holy egg will come out of nowhere and a hero will hatch from it. I also imagine a mysterious women who is destined to be the one for the hero coming from the misty lake.
I tried to depict emotions and spiritual imaginations that the sceneries inspired rather than recreating the scenery itself. I placed a few objects or a person to express mythical sceneries existing in us as traces of our inner world.
Every myth talks about another world that, we believe, co-exists with the real world we look at and live in. The other world has powerful presence that we cannot see. We call it the heavenly realm of gods. The faith in this presence is basically the theme of the series, "The Mythic Scape"
Lee, Jeong lok / 2006
자연은 복합적인 장소다. 친근하다가도 생소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고,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장소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이다. 자연은 특정한 시. 공간 속에서 매번 다르게 이해되어왔으며, 역사적, 문화적 해석에 의해 새롭게 환생해 왔다. 자연은 거대한 텍스트며, 실존의 장이자 심미적 공간이다. 동일 문화권 내의 구성원들에게 유토피아 像을 심어준다. 무엇보다도 하늘과 바다, 숲과 나무는 원초적으로 신화의 배경 무대이다. 우리는 그 자연으로 부터 태어나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그래서 새삼 자연 앞에 서면 자신의 근원에 대해 불현듯 생각에 잠기는 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시간의 지층과 결을 간직하면서 지금의 나를 부풀어 올려낸 존재에 대해 말이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한 유년시절의 추억과 경험, 이정록 사진의 근원이다. 그동안 정신적 토양으로 자리 한 자연/땅의 힘과 경이, 그에 대해 집단 무의식적으로 내려온 한국인들이 지닌 하나의 ‘아키타입화 된 풍경’을 찍어온 그는 특히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남녘땅을 소재로 삼아왔다. 그 사진들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풍경에 대한 질문이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한국적인 미의식의 일단을 재현하는 작업이고, 전통적인 풍수에 기인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표상화 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의 작업들은 그 얼마의 시간이 흐르며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사진에서는 흔하게 보았던 한국의 자연을 단순하고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납작하게 엎드려 누운 땅(밭), 갯벌, 고인돌이 놓인 대지, 대나무 숲, 그리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놓인 강가 등이 적막하고 다소 숭고하게 자리했는데 그 안에 원구들이 배치되었거나 불빛 등이 반짝인다.
대부분 하늘과 땅, 갯벌과 대 숲, 그리고 바다가 인접한 고즈넉한 풍경, 인간의 삶과 내음이 지워진 천연의 공간이다. 전에는 목적의식적이고 이미 선험적으로 자리한 풍경, 그러니까 정답을 찾은 후 발견한 그 풍경에 그는 지쳤다. 이제 그는 모든 관념을 지우고 무심하게 그 풍경 앞에 다시 섰고, 이전까지의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사진, 결론을 내리기 위한 작업, 그리고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부터 그는 해방 되었다. 이제 그는 그 모든 작업들에 어느 순간 무의미하게 느낀다. 그는 작업이나 인생이나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자연과의 ‘우발적 조우하기’ 를 적극 찾아 나섰다. 이전에 그가 즐겨 찍었던 장소를 이번에는 목적 없이 찾아갔고, 순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여기에 어떤 느낌을 더하면 좋겠나를 생각하며, 그 풍경 안에 모종의 장치를 해 다시 촬영을 한다. 자연풍경이 자연스레, 즉각적으로 작가에게 느낌과 영감을 불러일으킨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가시화한 것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자신의 상상력과 영감 속에 출현한 상을 개입시키고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몽상이나 환영, 또는 영적인 느낌을 표현한 그 사진은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가상,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영성이 혼재한다. 그 경계가 무척 모호하고 또한 가늠하기 어렵 다.
좋은 사진,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난 편안한 놀이로 사진을 대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만난 자연풍경에서 날것으로 만나는 감흥과 직관적인 느낌을 건져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 사진에 ‘신화적 풍경’ 이란 제목을 달아주었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자신이 본 특정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풍경을 매개로 특정 장소나 사물에 대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느낌이나 상상들을 가시적인 실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특정 장소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시각적 대상으로 다시 재현한다.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을 토대로 그 위에, 그 안에, 다시 자신이 보고 싶고 보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전라도 지역과 나주호, 고창과 영광의 갯벌이 그가 즐겨 찍는 장소다. 처음에는 스케치하듯 장소를 찾아가 생각하고 그 영감을 원천으로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4×5포맷 카메라를 사용해 풍경 속에 약간의 소품이나 인물을 배치한 연출사진으로, 머릿속에서 그린 신화적 풍경의 흔적을 표현 한다. 신비스럽고 몽상적이면서도 더없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사진들이다.
“ 나는 햇살 좋은 날,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광활한 갯벌이나 해뜨기 직전의 안개 자욱한 호수, 그 같은 풍경을 대할 때면, 하늘에서 신령스런 알이 내려와 우리들의 미래를 감당 해 낼 그 누군가가 탄생할 것 같다는 느낌을 느낀다. 나는 그러한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작가노트)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신화의 내용, 우리 풍경과 조우하는 한 경지를 사진으로 표상화 하는 이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이전 ‘남녘땅시리즈’ 처럼 한정될 수도 잇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학습된 문화에 의해 각인된 신화의 재현 보다는, ‘프로토타입의 신화적 모티프’를 확인, ‘현대성을 가진 신화적 분위기의 표현’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는 풍경작업을 하면서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자연의 힘을 더욱 느꼈다며, 보이지 않는 실재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 세계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특정 풍경과 마주치게 되면 마치 자신이 현실세계를 넘어선 피안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 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응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사람들이 받는 감동 역시 자신이 느낀 감정과 일치하기를 원한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정록이 보여주는 이 ‘신화적 풍경’은 단지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하거나 감성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풍경이고자 하는 것 같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 2007
Childhood spent in the countryside surrounded by the nature is the foundation of the artist’s mentality. His admiring the soil, especially the potential of the wondrous land triggers spontaneous mass nostalgia to Koreans. For a long time, Lee has photographed the South. Reminiscence of the native Korean landscape is behind his photographs; hence, the natural features in accordance with the traditional Korean feng-shui as well as the modern sceneries that have become somewhat weird from the never-ending real estate development.
His recent works show all about the remarkably beautiful nature of Korea. Sky and earth, mud flats and bamboo groves, as well as the nature untouched and remote from people are all captured in his photography. He says that he has returned to the nature as he got tired from a priori cognition of the world. His past works were to find answers to questions; however, it suddenly felt them meaningless. He realized that neither life nor art works could give the right answer; then he sets out on a journey. He aimlessly headed to a place where he had shot his first photograph; his emotions and impromptu reactions were conveyed to his new kind of works. Freed from an obligation of producing meaningful and valuable work of art, he now is more relaxed and sees photography as a play. Henceforth, he intends to bring the inspiration and intuition from the Mother Nature into the art works. The series, <Mythical Landscape>, is more than a mere snapshot; instead it is the visualization of the psychological and spiritual imaginations from view of a certain place or an object. Whatever randomly came into his mind are transformed into his works. Also he arranges in his works whatever he wishes to see or whatever is believed to be seen together with what already exists in real.
Chollado area and Lake Naju, also the tideland mudflats in Koch’ang and Hannam are his favorite spots. He repeated flying back and forth to a place that inspires him the most. Scenes with some small props and characters are staged and taken in to 4 x 5 view photography; this is the way he expresses trails of the mythical landscapes. It is rather the pursuit of ‘mythical atmosphere with the sense of modernity’ than a simple depiction of myths.
Lee says that he realizes the ultimate and absolute power of the Mother Nature from doing the landscape works and that he has also become more humble towards the vibrant nature. At a certain site, he confesses he occasionally feels as if he is in another world beyond reality. He wishes to become a transmitter that can pass on his emotions and inspirations from the nature to the viewers. Through him and his works, he also expects viewers to feel the same extraordinary sensations. It is why the landscapes in his photography are more of the spiritual healing than a stimulus either to your eyes or to your senses.
Park, young taik/ 2007
신화의 작자는 인간 일반이며, 다양한 욕망이 투사되어 구축된 이야기다. 인간 욕망의 집합체로서의 신화는 현실을 초월하지만 비현실적 이야기가아니라 삶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정록이 만드는 풍경은 개인이 삶의 터전에서 꿈꾸는 신화의 이미지이다. 작품 속 특정 장소나 사물은 개인적인 체험과 영적 상상력이 부여되어 머릿속 신화의 세계로 재현된다. 그러나 작품은 신화의 배경이 되는 자연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신화의 배경이 되어왔던 자연은 그의 신화적 풍경에서도 존중받고 있지만 신화의 클리세Cliche와 같은 환상적인 빛의 사용과 구체, 날개 모티프의 설치를 통해 초월적 존재의 탄생을 재현하고자 한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재생과 탄생의 이미지가 극대화되면서, 작품은 현실의 모든 존재가 초월되고 치유되는 신화적 체험의 매개가 된다.
김남진 / 2008